콘크리트 유토피아
와우
2024-03-27
작년에 개봉해서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 좋은 평을 받았던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 같은 목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다양한 등장 인물을 만나 볼 수 있다.
등장 인물들이 추구하는 목적은 같지만 각자 다른 이유로 다른 선택을 한다.
그리고, 선택의 이면에는 욕망이라는 공통 분모가 깔려있다.
인간 군상이라는 단어가 있다. 군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양을 말한다.
그 다양한 인간들의 모임은 각자 자기애에 가득한 모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같은 모둠에 속해 있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기에 군상이라는 의미에는 일치하지 않는 이 존재한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 군상은 인간의 이기신ㅁ이 기반된 다양성을 말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내면에 새겨진 DNA는 이기심이 가득하다.
이런 이기심은 욕망에 기반해 있으며,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다.
이기심이 없으면, 지금의 인간은 혹독한 자연 환경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이기심과 욕망은 개인주의와 자유 사상을 대표하고, 이타심은 사회주의와 평등으로 발전한다.
자유 게시판을 들여다 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다. 물론 구성원의 다양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갖은 욕설을 일삼는 글 속에 숨겨진 글을 잘 찾는 수고가 필요하다. 이는 마치 가시에 찔리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장미 꽃을 얻을 수 없는 것과도 같다. 이런 점에서 온갖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는 게시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저년차 사원들의 게시글에는 아주 단조로운 패턴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썩 달갑지는 않지만 다른 다양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자유 게시판의 여러 내용을 보면 사회적으로 편협한 생각을 가진 부류가 모인 집단이라고 일컬어지는 여러 사이트(일베, 펨코, 웃대...)와 거의 같은 형태의 군중들이 모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방을 주고 받는 맴버들은 조금씩 달라도 그 대상은 정확히 일치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분노를 자양분 삼아 세력을 키우는 이병헌은 결국 군중의 분노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 하나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용서와 포용은 아파트 내에서는 살아남지 못하고 먼 바깥 세계에서 싹을 틔우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난다. 결국 콘크리트 갖혀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생각하지만, 그건 분노와 폭력에 따른 결과물로 나타난 잠시의 즐거움일 뿐 콘크리트로 둘려 쌓인 공간에서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콘크리트로 둘러 쌓인 각자의 공간은 이기적인 공간이며 소통과 대화의 단절을 의미한다)
어쩌면 우리도 회색 빛 콘크리트에 갇혀서 서로의 분노를 자양분 삼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같은 목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다양한 등장 인물을 만나 볼 수 있다.
등장 인물들이 추구하는 목적은 같지만 각자 다른 이유로 다른 선택을 한다.
그리고, 선택의 이면에는 욕망이라는 공통 분모가 깔려있다.
인간 군상이라는 단어가 있다. 군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양을 말한다.
그 다양한 인간들의 모임은 각자 자기애에 가득한 모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같은 모둠에 속해 있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기에 군상이라는 의미에는 일치하지 않는 이 존재한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 군상은 인간의 이기신ㅁ이 기반된 다양성을 말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내면에 새겨진 DNA는 이기심이 가득하다.
이런 이기심은 욕망에 기반해 있으며,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다.
이기심이 없으면, 지금의 인간은 혹독한 자연 환경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이기심과 욕망은 개인주의와 자유 사상을 대표하고, 이타심은 사회주의와 평등으로 발전한다.
자유 게시판을 들여다 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다. 물론 구성원의 다양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갖은 욕설을 일삼는 글 속에 숨겨진 글을 잘 찾는 수고가 필요하다. 이는 마치 가시에 찔리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장미 꽃을 얻을 수 없는 것과도 같다. 이런 점에서 온갖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는 게시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저년차 사원들의 게시글에는 아주 단조로운 패턴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썩 달갑지는 않지만 다른 다양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자유 게시판의 여러 내용을 보면 사회적으로 편협한 생각을 가진 부류가 모인 집단이라고 일컬어지는 여러 사이트(일베, 펨코, 웃대...)와 거의 같은 형태의 군중들이 모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방을 주고 받는 맴버들은 조금씩 달라도 그 대상은 정확히 일치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분노를 자양분 삼아 세력을 키우는 이병헌은 결국 군중의 분노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 하나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용서와 포용은 아파트 내에서는 살아남지 못하고 먼 바깥 세계에서 싹을 틔우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난다. 결국 콘크리트 갖혀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생각하지만, 그건 분노와 폭력에 따른 결과물로 나타난 잠시의 즐거움일 뿐 콘크리트로 둘려 쌓인 공간에서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콘크리트로 둘러 쌓인 각자의 공간은 이기적인 공간이며 소통과 대화의 단절을 의미한다)
어쩌면 우리도 회색 빛 콘크리트에 갇혀서 서로의 분노를 자양분 삼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